2023. 2. 3. 21:51ㆍ중국문학사-그들의 세계속으로
1. 한족의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제국
청나라는 만주족의 왕조였으나 과거 몽고족이 지배했던 원나라와는 달리 문학과 예술이 매우 성행한 시기였다. 이는 청나라가 몽고족의 원나라처럼 잔인한 무력으로 한족들을 극악무도하게 핍박하지 않고, 무력을 쓰는 와중에도 부드러운 문화 융화 정책으로 한족들을 아우르려 했기 때문이다. 만주족은 한족의 문화가 가진 전통과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한족의 사회 관습이나 종교의식 같은 것도 존중하며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뿐 아니라, 만주족의 황실 사람들이나 귀족들은 스스로 자진하여 어릴 적부터 한족 문화를 배우며 한족과 같은 윤리관을 지니고 한족과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글을 짓기에 이르렀다. 만주족은 무력으로는 한족을 지배했을지는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한족에게 동화되며 그들의 것을 배우고 계승하며 함께 어울리려는 양상을 보였다. 그 때문에 이민족의 지배에 분노하고 슬픔을 터뜨리던 한족 지식인 사이의 분위기도 차츰 차분해졌고, 후에는 새로운 제국인 청조(淸朝)에 대한 원망을 찾을 수 없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청나라 전기에 강희황제(康熙皇帝)와 건륭황제(乾隆皇帝) 같은 훌륭한 왕이 나와 적극적으로 학술 부흥을 위해 힘쓴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강희황제 때에는 전무후무한 대문화 사업을 부흥시켰는데,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연감류함(淵鑑類函)」·「명사(明史)」·「패문운부(佩文韻府)」·「강희자전(康熙字典)」 등을 편찬한 공이 크다. 건륭 황제 때에는 「사고전서(四庫全書)」란 어마어마한 전집이 편찬되었고, 「십 팔성통지(十八省通志)」이나 「대청회전(大清會典)」·「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등이 나왔다. 그 사이 여러 번 수많은 전적이 불태워지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많은 한족 지식인들은 성군(聖君) 한족의 지식인들을 다양한 문화 사업에 참여시킴으로써 새로운 민족이 세운 나라에 대한 반대 세력을 없애려는 정책과, 나라는 망했다 하더라도 민족의 정신과 문화유산만큼은 잘 보존시켜야 한다는 한족 지식인들의 욕구가 일치한 효과이기도 하다.
2. 이전 시대 모든 문학 양식의 재조명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청대에는 고증학을 포함하여 고전적인 학문과 예술의 연구가 성행한다. 양계초(梁啓超)가 「청대학술개론(清代學術概論)」에서는 청대에 고증학이 발전했던 이유는 송나라와 명나라의 이학(理學)에 대한 반발심이 가장 컸다고 말한다. 청대 초기에 황종희(黄宗羲)·왕부지(王夫之)·고염부(顧炎武) 같은 학자들이 겉만 화려하고 내용은 실속 없는 부실한 학문을 배격하고 올바른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실용적인 실학(實學)을 주장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청대는 역사상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분야의 고전 연구에 있어 그 어느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난 업적들이 두드러진다.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고 보존하려는 복고적인 경향은 학술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도 뛰어났다. 청대에는 시나 소설, 산문 등 장르를 막론하고 이전의 중국 문학 상 등장했던 모든 분야의 문학이 다시 검토되고 본받아 다시 쓰였다. 심지어 산문은 담백한 고문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형식적인 변려문까지도 재조명되었고, 곡(曲)에서도 마찬가지로 잡극은 물론이고 곤곡(崑曲)·산곡·전기 등 모든 종류의 것들이 다시 지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청대의 문학은 완전히 새로운 조류나 창의성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고전 문학을 연구하고 정리했다는 면에서는 큰 성과를 냈다. 특히 송·명대에 민간에서 발생하였던 백화소설이 청대에 와서는 본격적인 문학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이렇게 볼 때 청대 문학은 중국 역사상 존재하는 고전문학을 정리하고 그 가치를 재탄생시킨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청나라 말에 이르러서는 서양 문학과 예술이 새롭게 도입되고 이것이 중국 정통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신문학의 창작 시대가 시작되는 것과 비교하여 더욱 그 가치가 두드러진다. (1840년에 시작된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서구 열강에 문화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외국의 학문과 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서양 국가의 학술서적과 문학작품이 들어오며 번역이 본격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지식인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었고, 오랜 중국의 문화 가치를 지키려 했던 청나라의 정책과 매우 대비되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청대에는 갖가지 중국의 고전문학이 모두 등장하여 연구되고 검토된 시대로, 이 시기에 중국 전통문학 역사에 대한 많은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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