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明代) 다섯 가지 전기(傳記)

2023. 1. 29. 14:36중국문학사-그들의 세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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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 초의 잡극과 전기

 

원대에 화려하게 번성했던 잡극은 본래 원의 수도였던 북경(大都, 北京)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유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남 지방에는 송대부터 유행하던 연극인 남희(南戲,  혹은 희문 戯文)가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다. 다만 원나라가 남송을 멸망시킨 후에는 원나라의 잡극에 압도되어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희(南戲)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민간에 명맥을 유지해 오면서 비주류로서 오랜 기간 동안 잠복시간을 갖는다. 연극은 시나 소설과 달라서 지역과 공간의 제한을 강하게 받는다. 시문이나 소설 작품은  인쇄가 가능하고 전국에 유포되는 것과는 달리, 연극은 일정한 범위 내의 지역에서 공연되며, 직접 공연장에 와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그 지역의 주민을 관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기에 전국을 순회하는 극단이 있을 리 없었고, 오히려 이 당시 극단은 한 지방에 정착하면서 그곳의 주민을 상대로 공연하였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하다. 남송이 멸망하면서, 원대 잡극이 아래 지방으로 내려오고 예전 남송의 수도였던 항주(杭州)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원나라 후기에 이르러서는 강남에서도 잡극을 전문적으로 짓는 작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극은 원래 북쪽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잡극에서 사용되는 음악과 언어, 극이 담아내는 정서와 기질은 모두 북방인에게 더 적합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남방 사람들이 잡극을 창작한다고 하더라도 잡극이 갖는 본래의 맛을 살리기가 힘들었고,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처럼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없었으며, 잡극 본래의 풍격과 특성을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기에 이르러서는 자연스럽게 잡극이 점차 생기를 잃게 되었다. 한편, 북방의 잡극이 강남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비교적 간단하고 단출한 단계에 있었던 남희(南戲)에 새로운 자극을 주어 그 창작 기교와 연출법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원 말·명 초에 강남지방 희곡 작가인 고명(高明)이 지은 「비파기」(琵琶記)」였다. 이 대본은 강남에서 생겨난 남희가 잡극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소박한 단계에서 발전하여 탄생한 새로운 연극이자 최초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비파기」 이외에 「배월정(拜 月亭)」·「형차기(荊釵記)」·「백토기(白兎記)」·「살구기(殺狗記)」 등의 새로운 극본이 나와서 이를 모방하여 각본을 쓰는 작가까지도 등장하고, 마침내 강남지방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희곡이 잡극을 압도하고, 나아가서는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전기(傳奇)'라고 한다.

 

 

 

 

 

2. 전기와 잡극의 비교

  '전기(傳奇)'라는 명칭은 당나라의 배형(裴鉶)이 지은 소설집인 「전기」에서 유래하여 당대에는 소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명·청 이후에는 잡극과 그 외 다른 형태의 새로운 희곡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전기'를 가리키는 명칭은 한 가지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잡극을 북곡(北曲)이라고도 부르는 것과 같이 전기를 남곡(南曲)이라고 칭하고, 원곡(元曲)을 명곡(明曲)이라 하기도 하듯, 남곡희문(南曲戲文)이란 뜻으로 남희(南戲)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기의 형식적인 특징을 가장 잘 알기 위해서는 원나라 북곡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두 문학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악곡이다. 가창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희곡에서, 악곡의 차이는 당연히 극을 짓는 형식과 방법에 변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북방 계통의 음악과 남방계통의 음악은 지역적/문화적 특색에서 비롯하여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크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차이인지 구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기에,  음악상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고 체제상의 차이를 비교하겠다. 첫째, 잡극은 한 작품이 4절(折)로 되어 있지만 전기는 '절(折)' 대신 '척(峋)'이라고 하고 척 수에는 제한이 없다. 그 때문에 40~50척으로 된 장편의 극본이 일반적인 형식이다. 단 전기의 척은 잡극의 절보다 짧다. 둘째, 잡극은 한 절에 한 가지 궁조(宮調)만을 사용하고, 한 절은 한 투곡(套曲)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절에서는 한 가지 운(韻)을 끝까지 쓰지만, 전기는 운을 바꿀 수 있다. 셋째, 잡극은 한 절에서 한 사람 노래하지만, 전기는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노래하고, 혼자 부르거나 대신 불러주거나, 다 같이 부를 수 있다. 넷째, 잡극은 설자(楔子)를 연극의 맨 앞이나 중간에 사용한다. 전기는 연극 첫머리에 '가문(家門)' 또는 '개장( 開場)'·'개종(開宗)'이라고 부르는 한 절이 있어서 전편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다섯째, 잡극은 대화가 순수한 구어체로 된 것이 많고 문언체로 된 것은 비교적 적다. 하지만 전기에는 문언문 물론이고 형식미를 극대화한 변려체 문장까지도 가끔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두 문학의 차이점을 볼 때, 전기가 잡극에 비해 형식은 한층 자유롭고 진화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원 말· 명 초에 나온 「배월정(拜 月亭)」·「형차기(荊釵記)」·「백토기(白兎記)」·「살구기(殺狗記)」를 '사대전기(四大傳記)'라 하고, 여기에 고명(高明)이 지은 「비파기」(琵琶記)」를 합하여 명나라를 대표하는 '오대전기(五大傳記)'라고 한다. 오대전기에 대한 내용은 다음 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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