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3. 08:07ㆍ중국문학사-그들의 세계속으로
위진남북조는 중국 문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대이다. 이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각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들은 비로소 자기 이름은 내걸고 개성적인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고 문학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이 당시 문인들에게 문학이 곧 학문이었다. 실용적인 글과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 것인가, 그 가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작품은 어떻게 읽고 평가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본격적인 문학론 또는 문학비평이 생겨났다. 먼저 위나라에서 조비( 曹丕)는 「전론(典論)」을 남겼는데 '문장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사업이며, 끝이 없는 성대한 일이다.'라는 문장을 서두로 시작하여, 문학은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업적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어서 창작론에 있어서는 유명한 '기(氣)'를 위주로 해야 한다는 이론을 펼치며 후세 문학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이들만큼 주의해야 할 글로 서진(西晉)의 육기(陸機)가 쓴 「문부 文賦]」가 있다. 그 글은 변체(駢體)의 부로 쓰여 있지만 형식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 독창적이고 참신한 내용을 갖고 있다. 그는 첫째, 문학이란 형식과 내용을 모두 중시해야 하며, 음절의 아름다움도 함께 중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둘째, 작자의 감정과 상상이 글 속에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셋째, 옛글을 흉내 내고 베끼는 것을 반대하였다. 넷째, 문장을 시(詩)·부(賦)· 비 (碑) · 뢰(誄)· 명(銘)· 잠(箴) ·송(頌)·론(論)·주(奏)· 설(說) 등으로 분류하고, 이 각각의 글은 모두 중심이 되는 풍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보다도 진나라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 子)」는 도교에 관한 저술로 유명하다. 그는 노자의 자연론과 장자의 진화론을 문학사상에 도입하여, 유가의 전통적인 문학개념을 멀리하고 참신하고 자연스러운 문학론을 전개하려 노력했다. 남북초에 들어가 유미주의적인 문학 풍조가 성행하면서 문학은 더욱 발전한다.
특히 전문적인 문학론저인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은 중국 문학사상 중요하고 기념비적 저술이라 할 것이다. 유협은 집안이 가난했으나 공부를 많이 하고 불교를 착실히 믿었다. 낮은 벼슬을 몇 번 했으나 노년에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이름을 혜지(蕙地)라 하였다. 「문심조룡(文心雕龍)」은 상·하로 나누어지고 총 50편의 글인데, 문학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을 전문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논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첫째, 문학의 내용과 형식인 문장의 질을 함께 중시할 것을 주장하여, 당시에 극성하던 유미주의적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둘째, 문학의 시대와 사회의 상호적인 관계를 중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도 이전의 현실을 외면하려던 당시 문인들의 잘못된 경향을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신념과 바탕 위에 그는 비평론을 확립하였고, 때문에 「문심조룡」은 중국 문학사상 획기적인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종영의 「시품」은 본시「시평(詩 評)」이라고도 불렀다. 「시품」이 「문심조룡」보다 뒤늦게 지어진 것이며 오언시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론인데, 한나라에서 시작하여 양 나라에 이르기까지 100여 명의 시인들을 상·중·하 삼품(三品)으로 등급을 매기고, 그 사람에 대한 간단한 비평과 함께 그 문학의 연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와 작품을 간단한 등급을 매겨 결정하고 비평하는 것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품」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 시대의 형식적이고 귀족적인 시풍을 반대하고 인간살이의 진실한 감정과 사람의 본성을 시의 중요한 바탕으로 해야 함을 주장하여 중국시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진실성이 결여된 시를 반대하며 작자가 가진 고유한 필체와 정신이 담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의 기교에 있어서도 형식미의 추구와 함축적 표현 반대하고, 자연스럽고 분명한 언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지나친 형식의 추구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손상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또 다른 이 시대의 문학론을 반영하는 것으로는 이 때에 나온 시문선집(詩文選集)들이 있다. 작품 선택과 그 편집 방법이 편집한 사람의 문학 의식을 무엇보다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시문 선집으로는 양나라 소통(蕭統)의 「문선(文邇)」과 서릉(徐陵)의 「옥대신영(玉臺新詠)」이 있다. 소통은 양나라 학문과 무제(武帝)의 글을 좋아하여, 많은 학자와 문인들을 궁으로 불러 모아 함께 학문을 논하고 글짓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동궁에 언제나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 있었고, 수 만권의 장서가 갖추어져 있었다. 「문선」은 그가 동궁에 모여들었던 여러 학자들을 동원하여 함께 편찬한 중국 최초의 시문 총집이다. 거기에는 총 38종으로 문체에 따라 시를 분류하여 배열하고 있다. 사조·성운· 대우를 존중하여 지은 글을 문(文), 논리와 서술에만 중점을 둔 글을 필(筆) 자로 구분하여 그 시대의 문학 풍조를 잘 반영하고 있는 시문 총집이다. 서릉의 「옥대신영」은 그 당시의 유미주의적 문학 풍조를 그대로 반영하며 시를 모아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은 「시경」·「초사」를 뒤잇는 중국 최초의 시선집이라는 의의가 있다. 이밖에도 남조에는 임방(任昉, 460-508)의 「문장연기(文章綠起)」, 안연지(顔延 之, 384456)의 「논문(論文)」 같은 문학논저가 나왔고, 심약(沈約)의 「사성보(四 聲譜)」는 중국시에 있어서의 성율에 관한 이론을 체계화하여, 곧 근체시가 이룩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중국문학사-그들의 세계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대(唐代)의 시 (2) - 성당(成唐) (0) | 2023.01.23 |
---|---|
당대(唐代), 화려한 시대적 특징 (0) | 2023.01.23 |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와 건안문학 (0) | 2023.01.21 |
한대(漢代) 시가 - 악부(樂賦)와 서사시 (0) | 2023.01.20 |
한대(漢代 ) 시대적 특징과 부(賦) (0) | 2023.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