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0. 18:21ㆍ중국문학사-그들의 세계속으로
1. 유교 중심의 국가
진시황이 B.C. 221년 천하를 통일하고 전국시대의 혼란이 잠잠해진 후, 그는 다시 전국의 도량형을 통일하고 한자의 자체를 통일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의 중국이란 나라의 기반이 되는 정치/문화적 터전을 이룩하였지만, 그는 백성에게 가혹한 정책을 남용하고 사상과 학술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마저도 통일하기 위해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폭정을 저질렀다. 분서갱유는 천하의 사상서를 모두 모아 불태우고 자신의 정책을 비방한 유생 460명을 잡아다 산 채로 땅에 묻은 사건이다. 한나라는 진나라 말엽의 법가사상을 버리고 백성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애를 썼다. 한나라는 유학을 받아들여 이를 나라의 정치이념으로 삼고 문화/사상/정치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이 당시의 학문은 군주 밑에서 유교의 예교를 중시하며 정치를 뒷받침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황제와 귀족의 아래에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형편이었다. 한나라 때의 문학은 이러한 영향을 받았는데, 한나라 때 유행한 부(賦)만 하더라도, 황제 주변의 사물과 사람을 긴 문체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묘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작가들은 왕을 모시고 따라다니며 황제를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의 문인은 마치 배우처럼 글을 짓는 재주로 황제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화려하고 길이가 긴 문체를 사용했던 것이다. 산문 역시 모두 황제와 관련된 글들이 주를 이룬다. 사마천의 <사기>는 궁형을 당하여 내시가 된 본인의 특수한 처지 때문에, 쓰는 글에 대한 본인의 신념과 열정이 담겨 있다. <사기>가 역사서로서 갖는 문제점이 적지 않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문장에 담긴 특유의 개성과 문학적인 면 때문이다.
한대 시가를 대표하는 악부(樂賦)는 본래 관청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악부>는 지방 곳곳의 민가를 채집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는데, 초기에는 황제를 즐겁게 하고 그 위세를 세워주는 것이 중심을 이루었지만 후에는 그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후기 한나라 때는 비교적 나이 어린 임금이 왕위에 올라 그 외척들이 권세를 잡고, 환관과 외척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비리와 정치 혼란이 극도로 심해졌다. 이에 지식인들은 외척과 환관들이 집단을 이루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 진정한 진리와 사회를 올바로 이끄는 길을 자각하게 된다. 문학 역시 그 성격이 변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부(賦)는 풍자를 바탕으로 한 5언·7언의 고시가 본격 발전한다.
2. 다양한 성격의 한 부(漢 賦)
한부를 대표하는 길이가 긴 부는 매승이 지은 <칠발(七發)>에서 시작된다. <칠발>은 문답체 구성으로, 초나라 왕자가 병이 나자 오나라의 손님이 그를 찾아가 병을 고쳐준다는 내용이다. 모두 7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려한 주변 사물에 대해 최대한 화려하고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으나 깊은 뜻은 없는 글이다. 이후 한부를 대표하는 사마상여의 <자허부(子虛賦)>가 등장하는데 이는 황제 주변의 사물을 화려하게 묘사하는 산체장부(散體長賦)가 성행한다. 사마상여는 그의 자전집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후세의 지식인이나 문인들과는 달리 임금을 즐겁게 하는 재주꾼이었던 듯하다. 양웅(揚雄)은 이러한 사마상여의 화려한 부를 좋아하여 그를 본뜬 글을 자주 썼다. 화려한 기교를 늘어놓으며 다른 사람의 글을 흉내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초연히 살아가려는 자신의 의지를 쓰며 새로운 개성을 나타내고자 함과 동시에 문인으로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나라 때 대표적인 작가로는 장형(張衡)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양도부>를 본뜬 <이경부>가 있는데, 이는 당시 일반적이었던 남의 글을 모방하고 표현을 길게 늘어놓는 수법을 그대로 쓴 글이다. 다만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도성의 장사꾼과 광대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 장면이 있고, 풍경을 묘사하는 데에도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의 개성적인 문장이 담긴 작품도 여럿 있는데, 그중 특히 <귀전>, <촉루>는 당시 유행을 벗어나 비교적 짧고 청신한 기풍을 담은 시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 말엽에는 반대로 길이가 짧은 다른 형태의 부가 유행한다. 길이가 짧은 부는 어떤 물건의 모습과 성질, 유래를 자세히 묘사하는 영물부와 개성적인 서정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특히 한나라 말의 서정부는 당시 어지럽고 혼란했던 사회상을 반영하여 사회의 모순에 눈뜬 작가의 작품들이 나왔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사회에 올바른 정도가 사라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백성들이 고통 속에 헤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비판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어지럽고 타락한 세태 속에서 백성을 구하지 않고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도층의 세태를 폭로하는 내용이 대다수이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모두 벼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황제의 지시를 벗어나 본인이 창작할 수 있는 개성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다양한 사회상을 담은 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당시 서정부의 작가들은 모두 오언(五言)고시를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반고의 <영사시>, 장형의 <동성시>, 조일의 <질사시>, 채옹의 <취조>가 있다. 이러한 문학들로 인해 한나라 말엽의 문학은 오언고시를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문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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